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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만든이웃] 어르신자서전쓰기 모임 진행했습니다.

관리자 2025-03-31 (월) 16:56 2일전 2  


오늘도 써오신 글 읽고 소감나눴습니다.



강창유 어르신이 "알뜨레비행장"에서 겪었던 아픔을 담담히 써내려 가신 '내가 살아온 추억의 일들' 이라는 제목의 글을 제가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 일본강점기 때 공출로 전 재산인 소와 밭을 잃고  아버님 강제징용으로 건강까지 잃고 굶주림에 형제들은 뿔뿔히 흩어져 살으셨답니다.

그 모진 세월을 담담히 적어놓으셨습니다. 알뜨르비행장이라는 시도 쓰셨습니다.

그 시절 평범한 사람들이 겪었던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로서는 상상할수도 없습니다.

다른 어르신들 말 없이 고개 끄덕이셨습니다.



손수인 어르신 청년들에게 고하는 수필 한 편, 시 두 편 써오셔서 읽어주셨습니다.

희수를 넘은 나이에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에게 계속 질문하십니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 난 젊은이에게 말하고 싶다.

젊은이들이여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있는 젊은이들이여!

뜨거운 열정으로 꿈을 향해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긍정적 마인드로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고....

그러면 성공이란 두 글자를 거머쥘것이라고

그리고 행복감도 크게 맛 볼것이라고....."



진심이 느껴집니다.



손수인 어르신은 일상을 시로 적는 데 익숙하십니다.

편하게 쓰셨고 편하게 읽었습니다. 부럽다 생각듭니다.



이제 1년 중 가장 바쁜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주의 겨울은 매섭지 않지만 봄이면 고사리 꺽고 밭에 나가 마늘수확도 해야됩니다.

어르신들 할 일이 많아집니다.  다음 모임 부터는 2주에 한 번씩 모입니다.

내가 살아온 추억속의 일들

강창유 어르신


흩어가는 세월속에 세상의 문을 열고 소리 치며 나오고 보니 하늘 땅 그리고 빛뿐이였다.

그속에서 7년 이라는 세월을 살다보니 일본 군인들의 마을에 잠시 들여 우리들과 만나기도 했으며 다니는 모습을 보면 사병은 철모를 쓰고 단도를 허리에 찻으며 장교는 큰 호마를 타고 허리에 대검을 차서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알뜨르 비행장에서 아카 돔보 비행기를 타고 조종사 훈련 하는 것을 보았다. 날개가 위 아래로 쌍날개로 되었으며 날개는 나무로 되고 몸채는 쇠로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 군인들의 송악산 진지 동굴 격납고 고사포 진지를 만들었으며 미군의 제주를 점령한 다음 일본 본토로 침략 한다는 예측 아래 제주에서 제7호걸 작전이라 해서 일본 군인의 약 7만명이나 제주에 들어온 사실의 알려 졌다.

그리고 알뜨르 비행장은 1926년부터 시작해서 1941년까지 3차 공사를 해서 약40만평을 건설하고 일본 폭격기가 폭탄을 싫고 알뜨르 비행장에 정착하여 연료를 공급받고 중국 남경으로 날아가 주민 30만명 대 학살하는데 주역활을 했다.

그리고 일본놈들은 공출이라고 해서 곡식, 소, 말, 심지어는 제사에 쓰는 놋그릇까지도 공출로 빼여 갔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도 소 공출을 년차적으로 3마리 공출로 나갔다고 형님과 어머님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소 한 마리가 밭한개 살 수 있는 큰 재산이라고 말 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소 한 마리 정도로 공출 했는가 하면 거이가 소한마리도 공출 안한 사람의 많이 있는 것을 알고 할머니 아버지 어머님의 마을에 소 공출 담당자 강oo 집에 찾아가서 이럴 수가 있는냐며 울면서 사정해도 아무소용 없었다. 그로 인하여 집안의 가난에 빠지게 됨과 동시에 마침 알뜨르 비행장 서남쪽 옥토 1800평 지명 궁둥의왓이라고 하는 밭을 비행장으로 잃어부니 집안의 완전 굶주리게 되어 살아가기 힘들어 아버지는 일본 북해도 탄광으로 돈벌기 위하여 집을 떠났으며 큰형님은 어린 나이에 일본 대판을, 여기에 있는 형들은 남의집, 아기 업게 누나들은 식모로 집을 나갔다. 그리 하여 아버지는 탄광에서 일 하다가 병이 나서 심방 침술ㅈㅇ의 치료를 받아 병의 낳았는데 비행장 격납고 건설로 자갈 작업 노동을 하던 중 일본 놈 책임자와 싸워서 그로 인하여 다시 병의나서 치료 못하고 일생 환자로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알뜨르 비행장

알뜨르 비행장에 이는 바람은 일본도가고 남경도 간다

너 때문에 3000명의 청년들의 굶주림과 강제 노동에

시달려 뼈아품 역사를 남김 비행장이여 너이 품에서 날

아간 폭격기는 남경 주민 30만명 대학살을 하였는데도 아

무일 없다는 듯이 오가는 사람들 태연히 만나주는 알뜨르

비행장아--- 저 송악산 진지 동굴 격납고는 나의 친구라고

외처나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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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여!


어렵고 힘들었던 경험이 없는 나는 고난이라는 단어가

내겐 생소하고 멀리있는 남의 얘기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살아온 길은 역경을 헤치고 이겨내어 듣는이에게 감동을 줄만한일이니

나 자신에게도 난 그때 참 잘 견디고 이겨냈다고 대견해하고

자랑스러워 할 만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 나이 73세, 고희를 지나고 희수를 향해 가고있는 나이가 되어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나자신이 살아온 길이 너무 후회스럽다.

어려움이나 아쉽고 절박함이 없었던 난 나 자신이 무얼 할것인지

무얼해야하는지 생각하고 자아 실현을 위해, 나의 개발을 위해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재능이 없지 않았고 많은 가능성도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참 지금 생각하면 너무 철 없었고 세상 물정도 모르고 날 뛰었고

생각이 짧았고 부족했었다고 생각한다.

또 너무 안일한 생각으로 살아온 것 같다.



몇 년전에 아들이 내게 책을 사다주었다.

아들은 책을 많이 구입하고 책을 많이 읽기도 하고

또 자신의 딸에게도 또 나에게도 책을 많이 사다 주었다.



사다준 책중에 76세때 그림을 시작해서 100세에 세계적 화가의

꿈을 이룬 미국의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과 글과 함께 수록된

인생철학이 담긴 책이었다. 미술도 했고 수상경력도 여러 번 있는 나에게

아들은 어쩌면 나도 모지스 할머니처럼 할수 있을거라고 판단하고

그책을 사다준게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근데 나는 왜 이럴까?

어느 누구는 고희가 지난 나이에도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되고 하는데



난 왜 이럴까?

난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도전정신과 자신감과 용기가 없고

지구력이나 인내가 부족한 탓인지 한가지 일에 몰두하지 못한다.


애절함이나 간절한 바램이 없어서 일까?

아님 너무 안일하게 살아온 탓일까?



난 젊은이에게 말하고 싶다.

젊은이들이여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있는 젊은이들이여!

뜨거운 열정으로 꿈을 향해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긍정적 마인드로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고....

그러면 성공이란 두 글자를 거머쥘것이라고

그리고 행복감도 크게 맛 볼것이라고.....

그리고 나아가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혜택과 도움을 줄 것인지 생각하고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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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르방>


젊잖게 두손모은

모자 쓴 돌하르방


거센바람 뜨거운 햇살에

꺼멓게 그을렸나보다.


웃을듯말 듯

묵묵히 오고가는 이들

오늘도 바라보는

제주지킴이

돌 하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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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녁 연기는

그리움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네


놀이 나갔던 아이

집으로 재촉하고


일나갔던 고단한 몸

편히 쉬라 부르네


일몰의 붉은빛은

따스하고 편안하게

내일을 기약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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