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미리 조사한 아이들 일정을 조율해 아이들과 연락을 해 당일 약속을 잡았습니다. 동영이는 머리가 아파 아쉽지만 오늘은 집에서 쉬기로 했습니다. 오늘 두 번째 회의에 참여하기로 약속한 관호, 자성이, 지원이, 승윤이, 예찬이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관호는 학원시간 때문에 4시부터 참석합니다. 3시가 되자 예찬이가 가장 먼저 도착했습니다. 첫 번째 회의와 마찬가지로 시간을 잘 지켜주었습니다.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지킬 줄 아는 예찬이에게 감사합니다.
“예찬이 어제와 마찬가지로 약속시간을 잘 지켜줘서 고마워요.”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 가운데 혼자 중학교 2학년 막내이기 때문에 형들 사이에서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됩니다. 조금은 말수가 적고 조용하지만 이 여행을 좋아하고 같이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보이기 때문에 함께 잘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예찬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져 노랑 실습생과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져봤습니다.
“예찬이는 어제 우리들 만나고 이야기 나눠서 어땠어요?”
“좋았어요.”
“예찬이와 친한 형들은 누구누구가 있어요?”
“동영이 형이랑 가장 친해요”
“어제 여행에서 먹을 음식들을 나눠봤는데 혹시 형들이 예찬이가 싫어하거나 못 먹는 음식을 먹자고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저 딱히 가리는 음식은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형들 의견 따를 거예요.”
비록 핸드폰 게임을 했지만 그래도 대답할 때 중간 중간 우리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남들을 배려하는 예찬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배려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또한, 모두의 자전거 여행이고, 당사자의 삶, 자주성 역시 중요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모두 함께 하는 것이 소중합니다.
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지원이가 도착했습니다. 지원이는 이 장소에 총 두 명만 모인 상황에 당황스러운 웃음이 나오는 모양이었습니다.
저 또한 당황스럽고 초조해졌습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까?”
“여행을 언제, 어디로, 어떻게 떠날지 정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지원이, 예찬이는 앞으로 가족여행이나 다른 일정 잡힌 게 있나요?”
지원이는 다 가능하고 예찬이는 7월 29일~8월 1일, 8월 3일~4일이 교회 캠프 때문에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회의가 진전이 안 되고 분위기가 침체되어갈 때 노랑 실습생이 혹시 지금 하고 싶은 다른 활동이 있는지, 밖에 나가고 싶으면 나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어느새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예찬이가 4시까지 청소년수련관으로 가야하는데 예찬이를 함께 데려다주면서 대정읍에 온지 며칠 안 되는 우리들을 위해 동네도 소개시켜주기로 모두 마음을 모았습니다.
4시에 복지관에 오는 관호를 위해 예찬이를 데려다주고 관호의 학원에서 관호와 함께 복지관으로 오는 멋진 계획도 세웠습니다. 작은 하나의 돌을 던지니 모두의 마음에 크고 작은 파동이 생겼습니다. 지원이와 예찬이가 종이에 가야할 곳 위치를 그리며 이곳에서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설명해주었습니다.
“여기서 다 가까워요. 우리 다 갈 수 있어요!”
우리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1박 2일 자전거여행 말고도 있으며, 복지관 안 우리의 공간에 얽매이지 말고 생각을 넓힐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 덕분에 오일장 잘 구경했습니다.
복지관을 나서니 뜨거운 햇빛이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청소년수련관으로 발걸음을 향하다가 지원이의 한마디에 우리의 발길을 돌렸습니다.
“선생님 지금 저기에 오일장 열렸어요, 가보셨어요?”
첫째 날 만난 변인자 계장님께서 말씀해주신, 대정읍에서 구경하면 좋을, 매달 뒷자리가 1일, 6일로 끝나는 날마다 선다는 그 오일장을 지원이의 입에서 듣게 되어 너무 반가웠습니다.
가고 싶었다고, 정말 궁금했다고 소개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새로운 장소가 추가되어 예찬이에게 묻고 의논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4시 30분까지 청소년 수련관을 가도 되니, 함께 오일장을 구경할 시간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오일장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옷, 생선, 과일, 음식 등등 없는 거 빼고 다 파는 생각보다 규모가 큰 곳이었습니다. 날씨가 더웠음에도 불구하고 오일장에 사람도 많고 북적북적해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함께 구경하며 오일장에서의 추억을 공유했습니다.
“엄마와 같이 장보러 가끔 와요.”
“어렸을 때는 여기서 옷을 샀었는데 요즘에는 안사입어요.”
“선생님 저 옷이 제주도 전통 옷인 갈옷이에요!”
오일장을 돌아보고 예찬이를 데려다주러 가는 길에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1:1 대화를 나누게 되니 좋았습니다.
“선생님 제주도와서 좋아요?”
“좋지~ 바다도 음식도 사람도.”
“실망 안하셨어요? 저는 제주도 바다에 쓰레기 있고 볼 것도 없어서 별로인 것 같아요. 할 일이 없어요.”
“나는 이곳이 너무 고즈넉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다르게 생각하는구나. 근데 사실 나도 내가 사는 곳을 별로라고 생각한적 있으니까 너도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면 우리 지내면서 제주도 대정읍을 즐길 수 있도록 함께 궁리해보면 좋겠다.”
# 빠듯한 일정.
예찬이와 헤어지고 시간상 관호는 복지관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자성이와 승윤이 까지 도착하고 난 뒤 본격적으로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오늘 처음 참가한 승윤이를 위해 어제 회의한 내용들을 아이들이 설명해줍니다. 특히, 지원이가 열심히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두 가지 루트를 말했어. 협재해수욕장 가거나 다른 하나는 용머리해변 갔다가 오설록 쪽에 있는 라멘이랑 흑돼지 먹고, 중문 가는 거야.”
“중문까지는 너무 먼 거리 아니야?”
“기다려봐, 내가 길 알려준다니까.”
오늘 처음 온 승윤이에게 설명하는 모습에서 회의에 열심히 참여했다는 뿌듯함이 지원이 관호, 자성이를 통해 보였습니다. 이런 소소한 성취감들이 쌓이는 과정들이 소중하다 느껴졌습니다.
필요한 역할을 알려주니 승윤이는 자성이와 요리를 맡겠다고 했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위해 아이들이 일정을 확인했습니다.
관호는 하루 정도는 학원을 뺄 수 있기에 주말이랑 평일을 걸쳐서 가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승윤이는 알바를 뺄 수 없는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안된다고 했고, 자성이는 8월 3일부터 4일은 교회 캠프로, 8일부터 10일은 수학여행으로 못 간다고 했습니다.
사실 자성이가 처음에는 8월 5일도 여자 친구랑 만나기로 해서 안 된다고 하다가 양보해주었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생각해 양보하는 그 마음이 참 고마웠습니다.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8월 5일, 6일이 자전거 여행에 적합하다고 나왔습니다.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이래도 괜찮을까,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너무 빠듯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의 여행이니만큼 아이들이 갈 수 있을 때 가야하는 게 맞는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아이들에게서도 어떻게든 참여하고 싶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원이가 달력 그리는 것을 자처했습니다. 친구들이 안 된다고 한날에 X표시를 합니다. 항상 뭔가를 부탁하면 가장 먼저 나서서 하는 지원이가 참 고마웠습니다.
# 돈을 어쩌지?
전날에 성훈이가 말한 맛 집 탐방을 주제로 여행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돈이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관호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우리 음식 먹으려면 돈은 어쩌냐?” “그러면 친구들이 음식 가격 알아볼까?”
“저번에 보니까 아오리라멘 9000원에서 10000원정도 하더라고요.”
“무슨 라면이 그렇게까지 비싸? 그 가격이면 그냥 안 먹고 만다.”
“흑돼지는 어디?”
“동영이가 말해줬다. 봉순이네 흑돼지 맛있다고.”
“거기 별거 없어. 나는 맛없었어.”
자성이는 라면이 그냥 라면이지 너무 비싸다며 경악했고, 승윤이는 자기도 먹어봤지만 별로였다며 경험을 나눴습니다.
이렇게 여행을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해서 다행이었습니다.
# 우리 진짜 어디로가?
사실 아직까지 아이들이 자신들이 직접 계획하고 도움을 받으러 다니는 방식을 진심으로 따르고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지원이가 설명했습니다.
“여행에 필요한 비용을 위해 우리가 도움을 부탁드려야해.”
아이들의 목소리가 쏟아집니다.
“정말 복지관에서 지원 안 해줘요? 진짜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해요?”
“돈을 어떻게 구해요? 알바 하는데 내 돈 필요한가..”
“우리는 자전거 여행을 가기위한 비용을 모으는 것이니 당당하게 여행에 대해 잘 설명하면 충분히 도움 받을 수 있다고 선생님은 생각해요.”
이미 자전거 여행을 경험해본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 자전거 여행 때는 어땠어? 뭘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했어요?”
“그냥 앞에 있는 대학생 따르고 자전거는 거기서 다 준비해줬고 물정도만 준비했어요.”
지금과는 다른 방식이었고 직접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이 아닌 짜여 있는, 그것을 따르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하고 찾아보고 고민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자성이가 제안했습니다.
“우리 진짜 너무 멀리로 힘들게 가지 말고 협재해수욕장 가서 바닷가에서 맛있는 음식 먹고, 캠핑하고 그렇게 즐기다가 오자.”
다들 동조하는 분위기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범위를 조정해갑니다.
“그러면 우리 무엇을 알아봐야할까?”
“해수욕장 근처 캠핑장이랑 거기 갈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봐야 해요.”
“여행 장비를 실어줄 차가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자성이가 서포트 카가 있다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나오길 원했던 이야기입니다. 이거다 싶었습니다. 아이들끼리 머리를 모아 이야기를 나누니 다양한 생각들이 들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