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정한대로 자전거 카페를 여는 날이 밝았습니다. 복지관에 들어온 홍 감자를 쪄서 메뉴에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오늘 다른 일정 때문에 못 오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성이는 우리 자전거 카페를 위해 잠시 들렸습니다.
자성이가 집에서 가져와준 유자차 가루.
“선생님 이거 레몬차인줄 알았는데 유자차였어요.”
“괜찮아. 자성아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오늘 와줘서 고마워.”
자성이가 떠난 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관호와 지원이, 그리고 지원이의 똑 부러지는 동생 지수까지 도착했습니다.
“자성이가 이 유자차 가루 아침에 가져와줬고, 어젯밤에 선생님들이 밭에서 감자 캐왔어. 우리 이거 팔아볼까?”
“아 정말요? 자성이한테 고맙네요. 감자도 잘 팔렸으면 좋겠다.”
오늘은 금요일로 복지관에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는 날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갑니다. 지원이, 관호와 함께 2층에서는 10시부터 필라테스 수업이, 3층에서는 9시 30분부터 청춘학교 수업이, 4층에서는 11시부터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숙지합니다.
지원이가 말합니다.
“우리 카페 먼저 갔다가 3층에서 팔아야겠네요.”
“빨리 아이스티 가루랑 종이컵, 메뉴판 들고 가자.”
모두 정신없는 와중에 관호가 판매량을 기록하기 위한 종이와 펜을 챙겼습니다. 역시 꼼꼼하고 차분한 관호입니다.
우르르 2층 복지관 카페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어제 만들어둔 아이스티를 담은 물병을 챙기고 얼음도 담으려는데 얼음 담을 바가지는 미처 챙기지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결국 다 같이 식당으로 내려가 아이들이 이모님에게 부탁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얼음 담을 그릇을 구하고 있는데 혹시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빌린 그릇에 얼음을 담고 모두 3층으로 가서 자리를 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쭈뼛쭈뼛 어찌할지 모르는 긴장한 모습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제 작성해본 대사가 입에서 바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과장님께서 사람들 몇 명과 함께 오셔서 우리가 자전거 카페를 연 취지에 대해 말씀해주시며 판매를 도와주셨습니다.
“여기 청소년 남자애들 총 9명이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데 지금 여행갈 돈이 없어서 이거 팔아서 모으려고 하고 있어요. 정말 기특하지 않나요?”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여기저기서 한잔 달라고 말합니다.
얼떨떨해하면서도 손을 바삐 움직여 먼저 종이컵에 얼음을 옮기고, 아이스티를 따르며 아이들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처음 해보는 것이니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주춤거릴 때 이렇게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앞으로의 진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원래 1,000원이었던 아이스티의 가격을 2,000원으로 인상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실 것이라는 기대감이 마음속에 부풀어 올랐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자전거 여행을 가는데요, 아이스티 사실래요?”
아직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용기를 얻은 아이들의 말에는 힘이 실려 있습니다. 청춘학교를 들어가는 어르신들께서 지금 뭐하고 있냐며 관심을 보이십니다. 마치 당신의 손주를 보듯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스티를 사주십니다.
“여행 잘 다녀오라고. 몸 건강하게 아프지 말고.”
벌써 한통이 비어졌습니다. 지원이가 카페로 가 분주하게 어제 해본 기억을 되살려 아이스티를 타봅니다. 얼음도 새로 퍼 담았습니다.
“지원아 이거 어디에 타?”
“선생님 이거 여기에다 하는 거예요. 제가 탈게요.”
“얼음은 언제 담으면 좋을까?”
“녹으니까 나중에 담아야 해요. 기다려요.”
벌써 아이의 것이 되어있었습니다.
이렇게 긴장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실행합니다.
스스로 그림자가 되었다고,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리기 위해 청춘학교 강당에 들어갔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어르신들 얼굴에 서린 호기심이 곧 응원과 흐뭇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응원의 박수를 받으며 이번에는 4층으로 향했습니다. 11시부터 회의가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구미를 확 당길 수 있도록 멘트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아이스티 드시고 가세요!”
“오 이거 괜찮다. 또 우리가 왜 자전거 카페를 하게 됐는지도 말해야하지 않을까?”
“아이스티 드시고 가세요. 저희가 자전거 여행을 가야하는데 돈이 필요해요. 그래서 이렇게 팔고 있어요.”
지수의 한마디가 우리에게 실마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모두들 입으로 되뇌며 이번에는 누가 얼마나 올까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긴장과 불안은 기대와 설렘으로 바뀌어있었습니다.
# 할 만 하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고 아이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우리 회의실로 아이스티 보내줘요. 계산은 후불로 할게요.”
관호와 지원이가 분주히 움직여서 회의실 안 의자 개수를 세어왔습니다.
“선생님 총 15명인가 봐요.”
종이컵에 얼음을 담고 아이스티를 따르는 아이들의 손길이 분주해졌습니다. 아이스티를 다 나른 후 이제는 3층 강당 앞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바리바리 짐을 싸서 내려가 종이컵에 미리 얼음과 아이스티, 찐 감자를 담아두었습니다. 드디어 강당 문이 열렸습니다.
“여기 앞에서 이렇게 팔고 있는데 우리가 사줘야지.”
“우리 아이스티 두잔 줘 봐요.”
“나는 찐 감자 한 컵.”
“이거 얼마야?”
“한 컵에 2,000원이요. 감사합니다.”
“아이스티 필요 없어. 뭘 또 마셔. 여기 돈만 받아. 여행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감사합니다.”
어르신 분들이 우르르 나오셔서 얼음과 아이스티가 금방 동났습니다. 지원이와 노랑 쌤이 얼음과 아이스티를 채우러 간 사이 관호, 지수와 함께 열심히 돈을 받았습니다. 관호는 몇 잔이 팔리는지 표시하다가 너무 많이 몰린 사람들 때문에 당황해서 돈 거스르는 것을 도왔습니다.
관호와 지원, 지수 덕분에 바쁜 상황을 잘 헤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후 한숨을 돌리며 얼마나 많이 팔렸나 행복한 고민을 했습니다.
그때 지원이가 말했습니다.
“우리 할 만한데? 여행 갈 수 있겠는데?”
이 말을 하는 지원이의 모습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자전거 여행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아이들은 이 자전거 여행 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걱정과 불안을 어느 정도 떨쳐내고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 지지를 몸소 체험하면서 해볼만하다는 용기를 얻는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자전거 여행으로 모인 우리가 처음에 돈을 벌어보고 이 돈을 어디서, 어떻게 쓸지 궁리하는 방향으로 회의가 흘러갔더라면 그건 그거대로 좀 더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앉아서 궁리를 하고 생각을 표출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그만큼 움직이며 직접 체험해보는 활동도 많이 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로식당 앞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다른 사업 실습 선생님들도 와서 아이스티를 사마셨습니다. 선생님들의 칭찬과 부러움, 응원 아이들이 모두 달게 받습니다. 자신들이 이룬 일이라는 뿌듯함이 표정과 말투, 행동에 드러납니다. 할 만하다는 자신감 충만한 하루입니다.
지원이는 아이스티를 따르고, 관호는 옆에서 메뉴판을 들고 서있습니다. 경로식당에서 식사를 다 하신 후 나오시는 어르신들 손에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쌈짓돈이 들려 있습니다.
“돈 많이 벌어서 여행 잘 다녀와.”
“안 마셔도 괜찮아. 많이 팔아.”
“감사합니다. 저희 잘 다녀올게요.”
지원이가 죄송한 표정으로 말을 합니다.
“우리 여기서 파는 거 할머니들에게 너무 부담 드리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 맞아요?”
관호도 열심히 외칩니다.
“할머니, 이거 아이스티 한잔 꼭 들고 가세요! 드셔보세요.”
4층에서 회의를 마치고 오신 임정순 회장님이 아이스티 마신 값이라며 무려 신사임당을 꺼내 넣어주셨습니다.
“아까 마신 거 아직 계산 안했지? 우리 애들이 자기들끼리 돈 모아서 자전거 여행을 간다는 게 너무 기특하다.”
‘우리’ 아이들입니다. 동네 사람들 모두 자신의 자식 또는 손주로 아이들을 보고 진심으로 대해주십니다. 그 마음 참 소중하고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느끼는 게 참 많은 하루입니다. 이렇게 도움을 받아도 되나 죄송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잘해야겠다, 잘할 수 있겠다는 다짐, 마음 등 여러모로 귀중한 시간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여행 간다고 해서 누가 도움을 줄까 라고 아이들의 마음에 존재했던 약간은 부정적인 시각이 이웃사람의 소중함과 응원하고 사주신 모두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통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방식으로도 아이들이 둘레 사람의 존재와 귀함을 배울 수 있구나 느꼈습니다.
이만 카페를 접고 설레는 정산시간이 왔습니다. 약 두 시간 동안 무려 264,000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모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초기 자금으로 모은 돈을 제외하더라도 자전거 여행을 위한 성공적인 수입금입니다. 아이들이 뿌듯한지 자꾸 돈을 세어봅니다.
우리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상의 후 다 같이 차를 타고 환희분식 모닥치기를 먹으러 갔습니다. 오늘 땀 흘리고 발로 뛰며 열심히 번 돈으로 먹는 음식이기에 더더욱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돈을 들고 사진을 찍을 때 모두 환한 미소를 지어줍니다.
밥을 맛있게 먹고 복지관으로 돌아와서 뒷정리까지 끝내고 관호는 학원을 갔습니다. 항상 어디서든 자신이 맡은 바 최선을 다하려는 관호의 책임감 있는 모습, 그 마음이 참 감사합니다.
# 잘 흘러가네.
관호가 간 후 지원이와 함께 당장 일요일에 가야하는 가파도 여행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준비물과 일정, 점심에 관한 계획을 세워보았습니다. 그 와중에 생기는 궁금증들을 지원이가 ‘마라도정기여객선’ 회사에 전화를 해 알아보았습니다. 알아봐준 지원이 덕분에 우리에 여행에 있어 꼭 필요한 중요한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가파도 가는 첫배와 막배 시간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가 가파도에 자전거를 타러 가는데 배에 실을 수 있을까요?”
“중학생이랑 성인이 같이 가는데 중학생은 학생증이나 등본이 필요할까요?”
가파도에 자전거를 들고 가지 못한다는 사실, 중학생은 성인과 같이 간다면 학생증이나 등본이 필요 없다는 사실, 그리고 가파도로 가기 전에 승선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사실까지. 모두 지원이가 직접 물어보고 얻어낸 정보들입니다.
“자전거 빌리는데 가격이랑 탈 수 있는 시간은 어떻게 될까?”
“찾아보니까 가격은 5,000원이고요 이거 그냥 한번 빌리면 하루 종일 탈 수 있는 것 같아요. 돈은 그냥 각자 가져오는 게 어때요?”
지원이의 말에 따라 가파도 여행을 위한 준비물들이 정해집니다.
“우리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그냥 짬뽕 사먹을까요?”
“직접 해먹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그럼 라면 끓여 먹을까요?”
“그러면 우리가 라면 끓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도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버너, 가스, 냄비. 우리가 다 먹으려면 두 개씩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러면 친구들에게 누가 가지고 올 수 있나 물어봐야겠다.”
“선생님 저랑 관호가 오늘 돈 벌었으니 오늘 안 나온 나머지 애들한테 가지고 오라고 해요. 그게 당연한 거죠.”
회의에 참여를 안 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실습생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있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때마다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지원이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회의에 열심히 참여해주고 활동을 하는 친구들에게 집중하고 세워주어야 합니다.
회의에 나온 아이들의 입으로 정한 사항을 공지하고 다른 친구들이 이를 따르도록. 즉, 자신의 말이 여행을 좌지우지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면 회의를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여행가서 뭐하면서 놀면 좋을까?”
“저희 자전거 타고 가파도 돌면서 구경해요. 수영도 하고, 가파 초등학교 예쁘다는데 거기도 한번 가 봐요.”
지원이는 관호, 원진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원진이에게서 버너를 가지고 오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회의내용을 잘 전달해주는 지원이 참 기특합니다. 서울을 가는 성훈이를 제외하고 8명 모두가 가파도 여행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희망하면서 오늘의 회의를 마쳤습니다.
수고해준 관호, 지원, 지수 그리고 아침에 유자차를 가지고 와준 자성이 너무 감사합니다. 소중한 경험과 깨달음을 얻은 오늘 하루 잘 기억하겠습니다.